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헤센의 알렉산더 공자 (문단 편집) === 오스트리아 === 니콜라이 1세는 불명예스럽게 알렉산더를 장군직에서 파면했다. [[알렉산드르 2세|알렉산드르 황태자]]는 알렉산더의 좋은 친구였기 때문에 자신의 아버지에게 알렉산더가 명예롭게 퇴직하고 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했지만 니콜라이 1세는 듣지 않았다. 알렉산더는 러시아에서 받던 월급과 율리아의 연금이 끊기자 루트비히 3세와 동생 마리가 비밀리에 보내준 2만 루블에 의존하며 스위스 호텔에 머물렀다. 알렉산더는 다름슈타트에 정착해 루트비히 3세가 안정적인 자리를 줄 것이라 기대했지만 헤센에서 알렉산더의 존재는 수치였다. 헤센측은 알렉산더에게 [[오스트리아 제국]]으로 떠나라고 했다. 결국 알렉산드르와 마리 부부까지 헤센 대공국에 방문해 루트비히 3세에게 알렉산더를 위한 장군직을 마련해달라고 했지만 끝내 루트비히 3세는 거절했다. 이에 알렉산드르 황태자는 오스트리아 측에 알렉산더를 고용해달라고 부탁했지만 니콜라이 1세의 분노를 사고 싶지 않았던 오스트리아의 황제이자 알렉산더의 5촌 조카 [[프란츠 요제프 1세]][* 알렉산더의 이종사촌 [[조피 프리데리케|조피 대공비]]의 아들.]는 부탁을 거절했다. 알렉산드르 황태자는 아버지 니콜라이 1세를 설득해 파면을 전역으로 정정해줬다. 그제서야 프란츠 요제프 1세는 자신의 5촌 외당숙인 알렉산더를 받아들였다. 오스트리아에서 복무하게 된 알렉산더는 [[그라츠]]의 수비대 사령관으로 임명받았다. 그라츠는 귀천상혼한 오스트리아의 요한 대공[* [[신성 로마 제국 황제]] [[레오폴트 2세]]의 6남으로 안나 플로흘(Anna Plochl 1804~1885)이라는 우체국장의 딸과 귀천상혼했다. 2009년 [[오스트리아]]에서 나온 사랑하는 요한, 사랑하는 안나(Geliebter Johann Geliebte Anna)라는 90분짜리 단편 드라마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이 사는 곳으로 프란츠 요제프 황제의 나름의 배려였다. 1866년 헤센 대공국은 오스트리아, 뷔르템베르크, 바덴, 나사우와 함께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 프로이센에 대항했다. 알렉산더는 [[https://en.m.wikipedia.org/wiki/Battle_of_Tauberbischofsheim|타우버비쇼프스하임 전투]]에서 연방 제 8군단을 이끌었지만 프로이센 군에게 졌다. 그 결과 헤센 대공국의 북부를 잃었다. 끔찍하게 반프로이센주의자였던 알렉산더는 전후에 프로이센 군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조카 하인리히[* 둘째형 카를 공자의 차남으로 프로이센 군에서 복무했다.]와 프로이센에 호의적이었던 조카며느리 [[영국의 앨리스|영국의 앨리스 공주]][* 조카 [[루트비히 4세(헤센)|루트비히 공자]](둘째형 카를 공자의 장남)의 아내.]에게 분노했다. 이후 알렉산더는 군에서 은퇴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